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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쓰레기통

보헤♥ 2025. 5. 7. 07:10

유명한 대기업에 다니다가 퇴사한 친구가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왔고, 괜찮은 외모에 머리도 똑똑한 친구였다. 그는 늘 대기업 임원이 되어 돈 걱정 없이, 예쁜 부인과 자녀를 두고 알콩달콩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꿈이 참 예뻤다. 그래서 나는 그가 이직도 잘 되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꾸 나에게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다고 말해도 듣지 않고, 계속해서 닥달한다. 면접은 계속 낙방되고, 지금은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허탈해하고, 우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다 보니 이유 없이 전화를 걸어오는 일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게 한 달, 두 달이 되어가니 점점 나의 시간까지 잠식당하는 느낌이 든다. 의미 없이 소모되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점점 지쳐간다. 혹시 기분 나쁠까 조심스레 말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엉뚱한 반응만 돌아온다. 무엇보다 부정적인 말들이 끝이 없다. 용기 내어 긍정적인 말을 건네면 “영혼 없는 위로”라고 핀잔을 준다.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물론 나 역시 힘든 시기를 겪어봤기에, 그 마음이 얼마나 고된지 알기에 진심으로 애가 탔던 거다. 그래서 기프티콘을 보내기도 하고, 따뜻한 말도 건네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잠깐의 감사뿐, 결국 다시 반복되는 부정적인 말들뿐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 친구에게 이렇게 얽매여 있는 걸까. 내가 힘들다고 말할 땐 흘려듣고, 자기 감정만 쏟아내는 이 관계가 과연 건강한 걸까. 이제는 거리를 두어야 할 때라는 걸 느낀다. 상대가 힘든 것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소모시키면서까지 감당할 필요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동안 많은 인간관계에서 힘들었던 이유는, 타인의 애달픈 마음을 마치 내 일처럼 느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 고통의 시간에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바랐던 사람이었으니까. 너무 아프고 외로웠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기에, 나는 더 다정하고, 더 인내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관계들이 나를 다시 과거로 끌어당기는 느낌이 든다. 돌아보면, 나 스스로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를 자처했던 것 같다.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나를 괴롭히는 모든 인연에 미련을 두지 않고, 담담히 놓아주려 한다. 나는 혼자여도 괜찮으니까. 정말 괜찮을 거다. 이제는 무작정 참고 이해하고 수용하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때그때 말할거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방해되는 건 방해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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