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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고양이란?

보헤♥ 2025. 5. 15. 01:08

어두운 터널을 함께 지나준 나의 동반묘

 

아빠를 잃고, 건강을 잃고, 결국엔 나 자신마저 잃어가던 20대의 끝자락. 아주 깊고 어두운 우울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즈음, 어여쁜 몸짓으로 사뿐히 다가온 존재가 있었다. 그 아이는 어느새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평소 지병을 앓고 계시던 아버지가 내 눈앞에서 쓰러지셨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찧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다. 나는 119를 부르고, 간이 인공호흡기를 열심히 펌프질하며 아빠와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아버지의 진단은 뇌출혈. 그리고 기나긴 병상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모든 상황은 내게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극심한 심장 통증이 찾아왔고, 혈압까지 요동쳤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미래를 꿈꾼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매일 병원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석션이 필요한 아버지와, 반신불수가 된 환자들의 고요하고 무거운 숨소리뿐이었다. 거기에다, 조그만 재산 앞에서 탐욕을 드러내는 작은오빠의 얼굴이 있었다. “아버지 좀 잘 부탁한다”는 무책임한 말만 남기고 물러선 그 모습이 전부였다.

 

그때부터 나는 서서히 시들어갔다. 아무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보내야 했다. 나름 지방대에서 과 수석까지 했지만, 그 시간은 이제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세상이 무섭고, 사람도 무섭고,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어디든 도망가고 싶었다. 숨고 싶었다. 아무것도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 시절, 내가 선택한 건 동물보호센터에서의 봉사활동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마음이 끌렸다. 그렇게 봉사를 이어가며 고양이의 매력에 조금씩 스며들었고, 어느 날, 예방접종을 마치고 보호소에 다시 나타난 한 마리의 고양이와 마주하게 되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 아이와 함께하고 싶었다. 저 아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먹여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생겼고, 그 확신은 나를 다시 세상으로 이끌었다. 용기를 내어 사회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건, 그 아이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를 많이 사랑한다. 정말 많이 아낀다. 누군가 내게 이 반려묘가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생명을 나눠주고 싶을 만큼 소중한, 내 인생의 동반자다.”

그냥 존재 자체가 그렇다. 내 어둠을 함께 지나준, 유일한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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